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이티하드 FC (문단 편집) === [[K리그]]와 악연 === 클럽 대회에서 K리그와 맞붙은 건 지금은 사라진 1999년에 열린 아시안컵 위너스컵(리그 및 FA컵같은 컵 대회 우승팀이 참가하던 대회로 [[유로파리그]] 전신인 위너스컵을 본따 만들었다) 대회이다. 결승에 올라온 [[전남 드래곤즈]]와 알 이티하드는 연장까지 경기를 벌여 알 이티하드가 3-2로 이기며 팀 역사상 첫 클럽국제대회 우승을 맛보았다. 하지만 이 대회는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아시안 클럽컵보다 비중이 낮아서 잘 관심을 끌지 못했고 경기면에선 원정에서 연장까지 팽팽히 경기를 벌이던 터라 알 이티하드는 제법 상대할만 팀으로 남게 된다. 비로소 그 악명이 세상에 울려펴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.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성남과 전북은 4강까지 순조롭게 진출했다. 4강에서 알 이티하드와 먼저 조우한 것은 전북이었다. 당시 알 이티하드는 중국의 다롄 스더에게 1승 1무로 다소 고전하며 2:1로 겨우 승리해서 진출했기에 그다지 위협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. 또한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은 4강까지 진출한 반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독일에게 0:8로 박살이 나는 등 득점 하나도 없이 대량실점을 당하며 처참하게 무너졌기에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그들이 뛰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 대해서도 우습게 여기는 시각이 많았다. 그러나 전북은 1차전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실점을 하며 1:2로 패하고 2차전 홈에서 2골을 먼저 넣으며 역전극을 보이는가 싶었으나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이어서 동점골까지 내주며 2:2로 비기면서 합계 3:4으로 아쉽게 탈락했다.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성남팬들과 K리그 팬들 대다수는 전북이 운이 없어 탈락한 것으로 봤고 알 이티하드 정도면 그럭저럭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. 알 이티하드의 1차전 결승골과 2차전의 추격골, 동점골이 모두 전북 이용발 골키퍼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.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오히려 더 처참했다. 성남은 알 이티하드의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판정의 불리함을 딛고 3:1로 완승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다. 원정에서 2점차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성남팬들은 벌써부터 우승을 자축하는 분위기였지만 여기서부터 알 이티하드의 깡패축구 전설이 막을 올렸다. 알 이티하드는 성남의 홈구장인 [[성남종합운동장]]에서 열린 2차전에서 성남을 '''5:0'''으로 박살내며 합계 6:3으로 대회 개편 이후 첫 우승컵을 획득했다. 당시 K리그 최강으로 꼽히던 성남의 처절한 패배는 성남의 팬을 넘어 K리그의 모든 팬 전체를 현실부정의 늪에 빠뜨렸으며 알 이티하드는 K리그 공공의 적으로 등극한다. 이 처참한 패배를 지켜본 성남의 유명팬인 [[샤다라빠]]는 경기장에서 울어버렸다고 한다. 2골의 어드밴티지, 그리고 중동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은 겨울의 추위를 고려하면 당시의 완패는 거의 초현실적인 참사에 가까웠다. 하지만 성남 선수들은 방심했는지 초반부터 우라돌격을 감행하는 등 안일한 플레이를 일삼았고, 1차전 패배 후 감독까지 경질되었던 알 이티하드는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. 알 이티하드는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활용한 고공축구로 성남 수비진을 유린하며 2골을 선취했고, 당황한 성남이 후반 역습을 감행하자 압도적인 개인기로 3골을 더 뽑아냈다. 게다가 성남의 에이스였던 브라질 출신의 두두가 오히려 추위에 위축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. 여담으로, 당시 스포츠토토에서 딱 1명이 성남의 0:5 패배에 10만원을 베팅했다. 그리고 7400배 배당으로 7억 4천만원(세금 33%포함)을 따냈다. 그리고 이 경기는 조예선부터 성남에게 불리한 판정을 벌인 중국의 [[루쥔]] 주심의 농간도 컸다. 2005년 대회에서는 구단주[* 사우디 축구팀이 거의 그러듯 여기도 구단주가 왕족이다. 하지만 왕족도 서열 별로 그 재산규모가 천차만별이라 [[이천수]]가 활약했던 알 나스르는 재정난에 빠진 적이 있다.]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[[인테르]] 출신의 모하메드 칼론과 [[미들즈브러]] 출신의 조세프 데지레 좁 등을 영입했고,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.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[[부산 아이파크]]를 원정 5:0, 홈 2:0, 도합 종합 7:0으로 초전박살냈다. 당시 좌절한 부산팬들이 퇴장하면서, [[롯데 자이언츠]]의 응원가 [[부산 갈매기]]를 불렀다는 루머도 전해진다. 사실, 일부 부산 팬들은 알 이티하드의 전력분석 이후 경기 전부터 거의 반쯤 포기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. 사커라인의 게시판에 올라온 알 이티하드의 전력분석 내용을 보면 전성기 시절의 알 이티하드가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.[[http://bbs.ruliweb.com/hobby/board/300254/read/2730155|링크]] 2006년에는 작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기세좋게 8강전부터 시작했지만[* 이때는 우승팀이 다음대회 8강에 직행했다. 더불어 알 이티하드는 리그에선 알 샤바브에게 져서 준우승했는데 알 샤바브는 2006년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[[울산 현대]]에게 1, 2차전 각각 0:6, 0:1로 완패하며 감독인 움베르토 쿠엘류가 해임됐다.] 시리아 알 카라마에게 8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4:2로 져 탈락하자[* 알 카라마의 피지컬 위주의 거친 플레이에 고전하다가 결국 피지컬이 강한 수비수 레다 투카르가 부상으로 실려나가자 그야말로 떡실신 당했다.] 모든 K리그 팬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. 참고로 알 이티하드를 꺾은 알 카라마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[[전북 현대 모터스]]에게 결승전에서 2:3으로 패해 준우승했다.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선 [[FC 서울]]을 1차전에서 홈으로 불러들여 3:1로 꺾었다. 서울은 2:0로 이기거나 아니면 3점 차로 이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결국 상암에서 열린 2차전에서 [[FC 서울]]이 후반 39분에 골을 허용하며 0:1로 패배했으나, 도합 3:2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고, 전북을 상대하게 되었다. 하지만 전북에게 통합 스코어 3-5로 패배하면서 탈락하면서 동아시아 킬러 이미지에 흠이 갔다. 2014 챔피언스 리그에서 라이벌 [[알 힐랄]]과 나란히 8강에 진출했는데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[[포항 스틸러스]], [[FC 서울]]과 더불어 8강 진출팀이 2팀인 나라가 되었다. 그러나 8강전 1차전에서 홈경기에서 아랍에미리트 [[알 아인]] 원정에서 0-2로 졌다. 이는 무관중 경기 여파인 탓이 컸다. 바로 16강전인 알 샤바브와의 홈경기에서 알 이티하드 관중들이 방화를 저지르며 경기가 잠깐 중단된 처벌로 AFC에서 무관중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. 결국 2차전 원정에서도 1-3으로 지면서 8강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시즌을 마무리했다. 반면 알 힐랄은 4강에서 라이벌을 꺾고 올라온 알 아인을 4-2로 이기고,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1차전 0-1 패, 2차전 0-0 무를 기록하며 합산 스코어 0-1로 [[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]]에게 사상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